<이달의 예술인>운학 박경동 선생

<이달의 예술인>운학 박경동 선생

문화예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삶과 모습을 간접적으로 나타낸다. 예술이란 많은 분야 중 서예란 한국의 전통예술로서 훌륭한 인격을 형성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삭막해져만 가는 현대사회에서 서예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화예술일 것이다.

운학 박경동 선생

한국의 전통서예 보급과 문화 보존에 힘쓰고 있는 충북 영동출신 서예가 운학 박경동 선생은 서예 포퍼먼스로 널리 알려진 서예가다. 서예의 대가인 죽사 박충식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서예수업으로 받으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서예학원에서 박 선생으로부터 붓 잡는 법 등 서예의 기초 등 모든 것을 배운 운학 박경동 선생은 사서삼경, 중국고전을 섭렵했고 중국산문 5천자도 그때 외웠다. 이후 충남 온양에서 당시 전각의 대가인 고석봉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고 서울 동방아카데미 7기로 입학해 여초 김응현 선생으로부터도 서예를 배우는 등 혼신을 다했다.

 

이미 잘 알려진 서예 포퍼먼스는 마음과 붓이 일심동체가 되어 하얀 화선지에 검은 묵으로 채워간다. 수 시간의 포퍼먼스를 마칠 때의 희열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한다.

하지만 희열이 큰 만큼 정신집중과 육체적으로 오는 피로감은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혹사시킨 탓인지 '대인공포증'이란 병을 앓게 됐다고 하는 운학 박경동 선생은 한의원을 다니며 서예와 치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했다. 결국 2000년도에 결국 고향인 기호리로 내려 온 운학은 혼자서 칩거하며 자신의 건강을 추슬렀다.

 

최근에는 현각에 열정을 쏟아내며 혼신을 다한 결과 다시 뇌경색이란 진단과 함께 붓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 되었다. 문득 다시는 붓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서예만을 생각하며 병마와 싸워가며 기적을 만들어 냈다. 붓을 다시 잡겠다는 일념으로 3개월만에 다시 뇌경색을 이겨내고 현재는 재활과 함께 병마에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붓을 잡고 있다. 서예가 희망과 빛이 될 수 있도록 서예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운학 박경동 선생은 “각 가정마다 현판을 만들어 가문의 분위기에 맞게 글과 그림을 새겨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해 주던 일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의 전통예술인 서예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저에게는 큰 힘이 되고 희망이었습니다. 저와 같이 병마에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저의 작품이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고 많은 국민들이 문화예술에 많은 관심과 격려를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밝혔다.

<운학 박경동 선생>

-대한민국 서예대전 (미협) 우 수 상 (97,)

-대한민국 서예대전 (미협) 초대작가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입선 3회 (93, 94, 95,)

-대전,충남서예전람회 우수상 (93)

-대전광역시서예대전 입선 3회 특선 3회 동 초대작가 (92∼96)

-국제서법대전 은장 (96)

◆ 개 인 전 ,초대전, 그룹전

-수굴 국제전각 예술전 (북경, 95)

-중국 국제 서예전 (서안, 94)

-국제전각 예술교류전 (북경, 95)

-한.중 서법문화예술대전 초대작가전 (99)

-전각.초서의 오늘전 (98, 예술의전당)

-한국서예 뉴밀레니엄전 (99, 예술의전당)

-제1회 개인전 (일본 오사카, 96)

-제2회 개인전 (대전타임월드 갤러리, 99)

-운학서예개인전(2005)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영동문화원 개관기념 초대서예전 (영동문화원,2000)

-난계예술제 제2회서예퍼포먼스 (영동공설운동장, 2000)

-대전검찰청 현판휘호

-박팽년선생 기념시비 휘호

-대전검찰청 대 회의실 입구 70cm-210cm작품 휘호(2점)

-밀양검찰청 2층 복도 전지 작품 휘호

-영동검찰청 2층 복도 전지작품 휘호

-영동지방법원 2층 복도 전지 작품 휘호

이외 다수 초대전, 개인전 작품 휘호

◆ 약 력

-영동대학교 사회교육원 서예강사 역임

-영동문화원 문자학, 서예강사 역임

-대전동구문화원 서예강사 역임

-영동군청 서예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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