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 사진출처 : 해당 영상 화면 캡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의 직책을 맡고 있던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간에 사건수사와 군의 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이 중심인 신군부세력이 군부 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10·26사건 수사에 대해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인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했다.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11월 중순 국방부 군수차관보인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했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연행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에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여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해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해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돼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해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해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에 그를 통해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게 설득했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했고 ,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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